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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퀴로 떠나는 세계여행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삶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허나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주저 말고 떠나도 좋습니다. 낯선 곳을 떠돌며 전혀 다른 만남을 경험하고 또 다른 세상을 맛보는 것도
아주 괜찮은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연히 만난 세계여행자
2011년 11월 15일 인천항을 떠나 중국 칭따오로 가는 배편에 세계여행 자유이용권을 쥔 스물다섯 살의 한 청년이 바깥 잠을 자기 위한 짐 꾸러미를 자전거에 매달고 몸을 실었다. 그는 이제껏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 온 박제민 군이다.


- 박제민. 1987년생. 경기도 거주. 세계 여행중.



오래전이다. 그가 자전거 세계여행을 꿈꾸게 된 건.
2009년 봄, 처음으로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주 어릴 적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가 되고 싶어 했을 정도로 모험심이 강했던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한 참 여행 중이던 그는 우연히 오토바이 세계여행자를 만난다. 지리산 정령치에서의 일이다. 낯선 이와의 만남과 그를 통해 들었던 적잖은 얘기들은 당시 자전거 전국일주를 나선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던 그에게 자전거 세계여행의 불씨를 당기고 말았다.

 

- 군 입대 전 떠난 자전거 전국일주. 지리산 정령치에서 만난 오토바이 세계여행자를 언급한 그의 블로그(왼쪽). 2009년 3월 자전거 전국일주 중 부산(오른쪽).



그동안 자신만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돌이켜 봤다. 지난 시간들을 찬찬히 돌아보던 그에게 자전거 세계여행은 조금씩 꿈이 되어가고 있었고 꼬리를 문 생각들은 이내 현실과 타협하는 듯 했지만 결론은 떠나고 싶은 욕망에 다다르고 있었다. ‘꿈을 이룬 사람이 되고 싶다’로 말이다.

그 해 4월 군 입대를 한 그는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어떤 경로로 갈 것인가와 어떤 장비를 이용할 것이가에 초점을 두고 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찾고 또 찾았다. 대부분의 준비는 군 복무 기간 내에 이루어졌다. 전역 후 이제 남은 건 여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12시간씩, 10만원 쓰던 용돈도 5만원으로 줄이고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악착같이 모았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어차피 돌아칠 거면 일찍 나가야 일찍 들어올 테니 하루라도 빨리 돌아치는 게 낫지 않겠냐.”

당치도 않은 자전거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험한 꼴 마다 않고 애쓰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예정보다 6개월이나 빠른 어느 날이었다.

서둘러 출국준비를 시작했다. 중요한 것들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모자란 장비를 구입하고, 배표를 샀다. 그에게 칭따오로 가는 배표는 세계여행 자유이용권과 같았다. 출국 당일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을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과 그 때의 감정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배에 오를 때 그에게는 커다란 냉장고를 살 수 있을 만큼의 여비가 마련 돼 있었다. 냉장고를 안사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냉장고를 안사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처음 가는 길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는 용기 내 첫 발을 내디뎠다.


-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포스팅 중(왼쪽). 세계여행 자유이용권이라 언급했던 중국 칭따오행 배 표(오른쪽).



자전거 여행의 매력
이동하는 시간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은 자전거 여행 최고의 장점이다. 깨어있는 시간은 오롯이 여행이 되고, 이에 캠핑을 더한다면 잠자는 시간마저 여행이 된다. 이동하는 내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볼 수 있고 도시와 도시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지나칠 수밖에 없는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 때론 특별한 장소가 평범해지기도 하고 평범한 장소가 특별해지기도 한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짐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것과 내 몸을 동력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강력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말한다.


- 길 따라 이동하다보면 모든 것들이 특별할 수 있다. 그것이 자전거 여행의 매력이다. 걷는 것보다 쉽고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 보다 디테일하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자전거만으로 국경에서 국경까지 이동하기란 여간 빠듯한 일이 아니다. 비자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여유가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는 원하는 곳만 골라가는 여행이 훨씬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 때론 물 길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눈, 비를 맞으며 미끄러운 도로를 달려야 할 때도 있다. 내리쬐는 태양에 까맣게 그을리기도하고 심한 피부병을 앓기도 한다.



여행 하는 동안 그는 대부분 텐트에서 잠을 잤다. 합법적인 일은 아니지만 깨끗한 뒤처리를 조건으로 양심과 타협하고 있다. 때로는 도둑이 들기도 하고, 무장경찰에게 취조를 당하거나 농기구로 무장한 농민들에게 둘러싸였던 웃지 못 할 일들도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운을 탓했겠지만 그는 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벌어지는 일일 뿐, 텐트에서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 밑에서 지내고, 땅위에 드러눕다 보면 어딜 가도 우리 집 같다고 한다. 커다란 침대를 가진 느낌이랄까. 장소는 바뀌지만 잠자리는 늘 같으니 그럴 만도 하다.


- 텐트 치는 곳은 매번 다르지만 텐트에 들어가면 같은 잠자리가 된다.


- 바람이 심할 때는 텐트 폴을 뺀 채 밤을 보내기도 한다(왼쪽). 영국 어느 시골마을에서의 캠핑(오른쪽).



자전거 여행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 같진 않은 모양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 여긴다고 한다. 그러니 자전거를 탄 외국인을 불쌍한 듯 쳐다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주기까지 한다.


- 사천성 장족과의 식사. 마치 한 동네 사람처럼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베트남 일정이 끝나갈 무렵, 작은 마을에 있던 가게에서 식재료를 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줬는데 그 사진 속엔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고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 같은 마음을 가진 듯하다. 떠날 때도 그를 꼭 안고 눈물을 훔치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만난 친구
여행한지 5개월쯤 됐을 때 비슷한 또래인 한국인 자전거 세계여행자를 만났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고 먼저 다가 온 김재욱 군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트북을 망가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AS를 받는 동안 하노이 근처에 있는 한국-베트남 장애 아동 센터에서 지내게 됐는데 그곳에서 재욱 군과 연락이 닿았다. 재욱 군이 마침 하노이에 도착해 있다는 얘길 듣고 첫 대면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마 노트북이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못 만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연이었나 보다.


- 하노이에서 만난 김재욱 군



재욱 군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현지 언어 적응이 언제나 느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의 눈엔 그 모습이 단점으로만 보였다. 자전거 여행자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생각을 지운지 오래다. 3년 가까이 수차례의 만남을 통해 가깝게 지내오면서 극복하거나 보완할 수 없는 단점을 끌어안은 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재욱 군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존경심이 들 정도다.


- 3년 가까이 같은 여행을 하고 있지만 늘 함께 하진 않는다. 재욱 군 역시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다.



혼자인 것보다 둘이 더 좋다. 힘들고 지칠 때나 말동무가 필요할 때 많은 의지가 될 것이다. 한 번은 자전거 체인이 망가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재욱 군이 밧줄로 그와 그의 자전거를 끌어준 적도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재욱 군과는 일정이 맞을 경우에만 짧게 동행하는 정도다. 이렇게 좋은 길동무를 마다하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이유는 뭘까. 그의 대답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싶었고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혼자라서 외롭고 또 외롭고, 힘들고 더 힘들어지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이러한 시간들이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혼자여야만 스스로 헤쳐 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종종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여행자들이 동행을 제안해 오기도 하지만 그는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해 왔다. 그만의 여행 철학을 지키기 위함이다.


- 아프리카에 오면서 둘은 동행을 시작했다. 이 대륙을 지난 뒤엔 또 다시 각자의 여행을 할 것이다.





힘이 되는 구원의 손길

 


- 유인터내셔널에서 보내 온 모자, 양말, 그리고 휴대용 정수 필터.

여행을 하다보면 간절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름 아닌 장비 보수와 유지 문제다. 가장 중요한 자전거와 텐트, 침낭, 매트를 포함해 스토브나 휴대용 정수필터 등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장비들이다.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장비이기도 하다. 통장 잔고의 한계로 최대한 여비를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협찬이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의 손길을 붙잡는 것과도 같다.

그 동안 수십 차례의 시도를 해왔다. 아마 100번도 훨씬 넘을 것이다. 처음엔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별 다른 반응이 없어 해외 본사에 직접 연락을 취했다.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한국지사에 연락해봐라”였다. 처음에도 그랬듯이 역시 한국에선 반응이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에겐 매 번 아쉬움이 남는다.

도움의 손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영국의 부룩스 본사에서 안장을 교체 받았고 구리에 있는 하비투스 스페셜라이즈드 샵에서는 자전거 용품을 지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로 이동하기 전 유인터내셔널에서 휴대용 정수필터인 카타딘 포켓과 선데이 애프터눈스 모자, 포인트 식스 양말 등을 협찬 받았다.

휴대용 정수필터는 아프리카에서 꼭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마침 한국을 떠나기 전 카타딘 하이커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긴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필터교체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지며 제품을 찾던 중 유인터내셔널을 알게 됐다.

큰 기대 없이 도움을 요청해 보기로 하고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메일을 보냈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돌아왔다. 카타딘 제품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들을 몇 가지 더 챙겨서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그에게 아주 유용한 제품들이었다. 카타딘 포켓은 말할 것도 없고 케이프가 달린 모자는 뜨거운 햇빛을 차단해줄 뿐만 아니라 모래 바람까지 완벽하게 막아준다. 울 양말은 통풍이 잘 되고 땀 배출이 원활해 불쾌감을 느끼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세탁을 자주 못하는 상황이 되면 짧게는 3일에서 일주일까지 신어야 할 때가 있는데 갈아 신는 주기가 길어 문제없다고 한다. 그는 도움의 손길에 진심으로 감사해 하고 있었다.


- 소중한 도움의 손길 덕분에 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



D+1178(2015년 2월 5일 현재)
인천항을 떠난 지 벌써 3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이쯤 되면 자전거 여행은 그에게 그저 일상으로 여겨질 정도다. 매일 다른 풍경을 보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은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인 것이다. 처음엔 거창한 포부와 뜻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전거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조차 모호해졌다. 시작이 두려웠던 만큼 끝 또한 두렵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여행을 끝낸 뒤 한국에 돌아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가야할 길과 넘어야 할 산, 건너야 할 강과 바다가 있어 그는 오늘도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그는 지금 아시아와 유럽을 지나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워킹홀리데이로 긴 시간 머무를 예정이며, 남미와 북미를 거쳐 일본을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갈 계획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 스페인, 벨기에, 터키,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지역 신문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 스위스 알프스.


- 중국 운남성.


- 터키 카파도키아.


- 삭발. 티벳 스님으로부터.



박제민 군의 건강과 안전한 여행을 기원합니다.

http://www.gullyg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