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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안산 한 바퀴




인왕산 너머 저 멀리로 보이는 북한산 연봉

다 같이 돌자, 안산 한 바퀴




intro.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 입춘 지난 지 한 달이지만 봄소식은 아직이다. 하지만 겨울이 조금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 혹은 얼음이 곳곳에 보이지만 바람의 온도가 겨울과는 다르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제법 포근하다. 주말을 이용해 봄을 찾아 남쪽 멀리 떠나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집 근처 뒷산이라도 한 바퀴 돌아보자. 잘 살펴보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나절 정도 걷기 좋은 코스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안산을 한 바퀴 돌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안산. 서대문구청 쪽 들머리.

안산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높이는 300m도 채 되지 않아 산이라는 이름이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아파트 빼곡한 도심에서 나무 가득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에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내내 편안한 데크길이 이어져 노약자나 장애인도 부담이 없다.

산이라면 질색이라고? 오히려 그런 이들에게 안산이 제격이다. 안산 중턱에 데크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전혀 없는 건 아니어서 몸이 지루하지 않고 잣나무와 메타세콰이어가 만든 풍경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서울 시내 풍경 덕에 마음도 지루할 틈이 없다. 너무 심심해 재미가 없겠다고? 그런 이들에게는 안산자락길 곳곳에서 오를 수 있는 안산 정상의 봉수대를 권한다. 자락길에서 벗어나 봉수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물론 그래봐야 10분 남짓이고 어린이들도 신나게 오를 수 있다.


서대문구청에서 간단하게 짐을 꾸려 출발.

우리는 서대문구청에서 만났다. 구청 안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로 몸을 녹인 뒤 길을 나섰다. 아스팔트 포장된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이내 안산자락길을 만나게 된다. 잠깐 걸었는데 몸이 데워지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산행, 특히 겨울산행의 제1원칙은 덥기 전에 벗고 춥기 전에 입는다.


겨울숲과 파란 하늘이 만든 풍경. 데크길 역시 완만하게 이어져 부담스럽지 않다.

겉옷을 벗어 배낭 안에 넣고 가벼워진 몸놀림으로 데크길을 걸었다. 우리나라 산 곳곳에서 데크를 볼 수 있지만 안산의 데크는 조금 다르다. 노인과 어린이, 임산부와 장애인 등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무장애코스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계단을 놓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곳도 완만한 경사의 긴 오르막 데크를 지그재그로 놓았다.


햇살 따스한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서대문구청은 안산자락길의 북서쪽에 있는데 우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락길을 돌았다. 안산의 남쪽 자락에는 겨울 햇볕이 따뜻했다. 평일이지만 운동 삼아 자락길을 걷는 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겨울에 양지바른 길은 봄의 꽃길이다. 안산에 벚꽃 개나리 목련이 피어 산을 예쁘게 물들이면 가족과 연인의 발길이 줄을 잇기로 유명하다.


안산천약수터. 여기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노익장을 과시하는 어르신. 물구나무도 섰다.

서대문구청에서 조금 걸으면 안산천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에는 체육시설도 있는데, 이곳이 동네 어르신들에게 핫한 장소인 것 같았다. 어지간한 체육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링부터 덤벨까지 있었는데 어깨가 떡 벌어지고 가슴 근육이 단단해 뵈는 어르신들이 여럿 계셨다. 따스한 늦겨울 오후의 평온한 일상이 거기 있었다.


멀리엔 북한산 능선, 건너편에 인왕산, 뒤로는 남산을 비롯한 서울 도심. 셀카 한 장 안 찍을 도리가...


봉수대에 오르면 또 풍경이 다르겠지?


무척 험준한 등산로. 하지만 재미 좀 느낄 만하면 어느덧 정상이다.


정상 봉수대 오르기 직전 잠시 인왕산을 보고 있다.

자락길을 걷다가 봉수대 오르는 이정표를 보았다. 햇살이 좋아 봉수대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거대한 암반이 듬직하게 솟아 있었고 오르는 길에는 쇠동앗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 봉우리에는 돌로 쌓은 봉수대가 있었다.


거대한 암반에 위치한 봉수대. 쇠동앗줄을 잡고 올라야 한다. 하지만 힘들기보다 재미있는 편이다.


정상 봉수대에서 본 남쪽의 풍경. 남산이 가깝고 롯데 타워와 멀리 청계산 능선이 보인다.

봉수대 가는 길은 데크길이 아니라 일반 등산로다. ‘생각보다 힘든데?’ 싶은 생각이 들 만하면 정상이다. 호흡을 고르고 전망을 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 한강과 여의도는 물론 멀리 관악산과 삼성산까지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차산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산줄기 안쪽으로는 빼곡한 빌딩과 아파트들이 성냥곽들처럼 들어차 있다. 가깝게는 동쪽으로 바로 건너편에, 그러니까 무악재를 넘는 도로 건너편으로 인왕산과 그 아래로 편안하게 펼쳐진 경복궁의 기와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산 언저리에 위치한 서대문역사박물관. 옛날 서대문형무소다.


안산자락길의 서쪽을 돌면 서대문역사박물관이 더 가깝게 보인다. 규모는 많이 줄었지만 시대의 흔적은 역력하다.

가슴 아픈 풍경도 있다. 안산 바로 아래로 붉은 벽돌 건물이 부채의 살처럼 혹은 화살표 모양으로 퍼져 있다. 서대문형무소다. 지금은 서대문역사박물관이다. 1908년 지어진 대규모 근대식 감옥으로 원래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다. 강제병합 이후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수감인원이 늘어나게 되었고 마포에 새로 경성감옥을 짓고, 기존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3.1운동 이후 수감자는 다시 급격히 늘었고 대대적인 신축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이름도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다.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가들이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고초를 겪은 곳이다. 해방 후 서울교도소와 서울구치소였다가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가면서(1987년) 사형장과 제10, 11, 12옥사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마침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인지 서대문역사박물관을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족두리봉이 보이지 않는가!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삼각산(북한산)의 봉우리들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족두리봉과 향로봉, 비봉으로 이어지는 삼각산의 능선이 근사하게 펼쳐져 있다. 백운대와 인수봉을 볼 수 없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삼각산의 연봉들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이런 정자들이 곳곳에 있어 김밥이나 따뜻한 차 한 잔 나누기에 좋다.


안산의 서쪽 자락을 걷고 있다. 나뭇가지들이 아직 겨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봉수대에서 내려와 다시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오가면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전문적인 산행 복장보다는 뒷산에 운동가는 복장에 가까운 차림들이 많았다. 안산을 한 바퀴 도는 자락길은 길이가 약 7km로 빨리 걸으면 1시간 반이면 산책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나무도 쳐다보고 겨울 햇살도 쬐고 봉수대를 비롯해 데크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의 이런저런 표정들도 감상하고, 한 번쯤은 정자에서 따뜻한 차도 마시고 간시도 먹다 보면 반나절 시간을 여유있고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우리가 서대문구청에서 만난 건 오후 2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늦겨울의 오후를 유유자적 즐기고 안산을 내려온 건 6시 무렵이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이런 풍경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낮 버전에 감탄을 한 후 밤 버전이 궁금해 해 진 뒤에 다시 안산을 올랐으니.


안산은 남북으로 긴데 남쪽을 끼고 도니 멀리 봉수대가 보인다.


파란색 화살표를 따라 돌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걸었다.


해질녁의 서울. 안산에만 올라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물론 날씨는 좀 골라야 한다.

일행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험이 있는 한 명도 두 번째였고, 그 한 번의 경험도 지난 가을이었다.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자 안산의 봄 표정이 궁금해졌다. 벌써 3월, 진짜 봄이 머지않았다. 봄 햇살 따사로운 날, 벚꽃이 꽃구름을 이루고 개나리가 안산을 점점이 수놓은 날 가벼운 도시락 들고 안산을 다시 찾기로 하고 안산자락길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한바퀴를 돌고 다시 서대문구청으로 내려가는 길. 사실 날머리를 지나쳐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OUTRO_서울의 밤 / 해가 졌다. 같은 겨울이지만 동지 이후로 낮의 길이는 조금씩 길어져왔다. 겨울의 산은 오후 5시가 넘어가면 어둠의 기운을 느낄 수 있지만, 도심의 산이어서, 그리고 2월 말의 산이어서 6시가 조금 넘어야 하늘이 붉어진다. 우리는 안산에서 내려와 뜨끈한 국물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오늘 바람은 꽤 센데, 햇살은 그래도 좀 따뜻하네요.”
“그러게요.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오려나 봐요.”
“하루 종일 맑아서 야경도 제법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소화도 시킬 겸 잠깐 올라가서 서울의 밤풍경만 보고 내려올까요?”
“혹시나 싶어서 헤드랜턴도 챙겨왔는데, 잘 되었네요.”
산이라기에 쑥스러울 정도지만 한 바퀴 돌고 내려온 산을 다시 오르는 건 솔직히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낮에 우리가 안산에서 바라본 풍경의 밤 버전을 나름대로 상상했는지, 군말 없이 헤드랜턴에 불을 켰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라선 순간,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우리를 반겼다.


올라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올라갔고, 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 information

곁에 있어 더 소중한, 안산_서울 서대문구


안산의 원래 이름은 무악산이다. 그래서 안산과 인왕산 사이의 고갯마루 이름이 무악재다. 무악산은 조선이 시작될 때 궁이 들어설 뻔한 자리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배우 조희봉이 연기한 하륜은 무악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풍수지리의 기본은 배산임수이니 그랬다면 무악산 남쪽의 신촌 일대에 궁이 들어섰을 것이다. 김명민이 연기한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고 결론은 경복궁에서 알 수 있듯 북악산이 주산이었다. 한양도성은 주산인 북악산과 서쪽의 인왕상,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을 따라 세워졌고 따라서 안산은 사대문 밖 지역이었다. 덕분에 별다른 훼손 없이 오늘에 이르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안산자락길은 안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설계되어 어디서 출발하든 원점으로 회귀할 수 있다. 중간에 정상 봉수대에 잠깐 올라 주변을 살펴보고 내려와 자락길을 돌면 된다. 안산자락길은 모두 데크로 연결되어 초보자는 물론 유모차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무장애코스다. 경사도도 최고 경사도가 9도를 넘지 않도록 하여 휠체어나 유모차를 배려했다. 전체 코스는 약 7km. 천천히 걸어도 한 바퀴 도는 데 두 시간이면 넉넉하다. 문의 서대문구청 02-330-1938


먹을 곳
안산자락길을 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내려오면 바로 도심과 연결되기 때문에 연남동이나 홍대 주변의 맛집을 이용하면 된다. 천천히 둘러볼 예정이라면 김밥 한두 줄 챙겨서 오르면 좋은데, 우리는 서대문구청 쪽으로 올라서 구청 옆 봄꽃김밥에서 김밥도 싸고 하산 후 간단히 요기도 했다. 02-324-1830


봄의 문턱에서 안산 자락 한 번 걸어보시는 건 어떤지.